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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장유정 감독이 연출한 <부라더>는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선 가족 영화입니다. 마동석과 이동휘, 이들이 연기한 ‘현봉’과 ‘석봉’ 형제는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으며, 묻어두었던 감정과 과거를 마주하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웃음을 유발하는 형제의 티격태격 코미디이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해체와 회복, 그리고 세대를 관통하는 ‘용서’의 정서가 깔려 있습니다. 특히 영화는 전통적인 가족극의 틀 안에 한국식 유머와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하여,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현실의 냉소와 따뜻한 정서가 공존하는 <부라더>는,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마지막에는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형제, 그들의 웃픈 재회
영화의 시작은 서울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던 두 형제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형 현봉(마동석 분)은 실패한 사업가로, 인생의 매 순간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전형적인 ‘인생 지친 형님’입니다. 반면 동생 석봉(이동휘 분)은 회사에서 잘리고, 연애에서도 실패한 젊은 세대의 초상을 대변합니다. 두 사람은 성격도, 가치관도 정반대입니다. 한쪽은 현실적이고 다소 거칠며, 다른 한쪽은 감성적이고 예민합니다. 오랫동안 연락조차 끊고 살던 이들이 아버지의 장례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이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웃음과 감정을 절묘하게 오가며 분위기를 잡습니다. 낯선 고향, 어색한 친척들, 서로를 바라보는 냉랭한 형제의 시선 속에서도 작은 농담과 유머가 오갑니다. 감독은 이 장면들을 단순한 코믹으로 소비하지 않고, ‘가족이란 관계의 불편함’을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현실 속 형제 관계는 종종 사랑보다 오해와 경쟁, 비교의 감정으로 얽혀 있죠. 하지만 <부라더>는 이런 현실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간적인 정을 포착합니다. 형은 동생의 실패를 비웃으면서도 결국 그를 챙기고, 동생은 형의 무뚝뚝한 태도에 분노하면서도 그가 속으로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를 알아차립니다.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는 과정은 때로 코믹하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있습니다. 특히 두 형제가 장례 절차를 치르며 벌어지는 일들은 한국적인 정서 속에서만 나올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서로 다투고, 울고, 결국엔 웃으며 밥 한 끼를 함께 먹는 순간들. 이 일련의 과정은 단순한 가족 모임이 아니라, 그들이 ‘형제’로 다시 태어나는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바로 이 ‘웃픈 정서’에 있습니다. 웃다가도 문득 코끝이 찡해지고, 익숙한 대사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게 됩니다. 현실 속 수많은 가족이 그렇듯, <부라더>의 형제 역시 완벽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여전히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선 ‘가족의 서사’로 변모합니다.
유쾌함 속에 깃든 상실과 화해의 서사
<부라더>는 외형적으로는 코미디지만, 내면적으로는 상실과 화해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중심에는 ‘죽음’이라는 주제가 놓여 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라는 사건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형제의 감정이 다시 이어질 수 있는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 무덤, 제사, 조상과의 관계 — 이런 전통적 요소들이 형제의 관계 회복을 위한 상징적 배경이 됩니다. 장례라는 특수한 공간은 인간이 자신을 돌아보는 자리입니다. 형제는 이곳에서 자신들의 삶을 반추하고, 아버지와의 미완의 감정을 정리합니다. 현봉은 자신이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실패자로 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고, 석봉은 그런 형을 원망하면서도 결국 자신도 똑같은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판타지적 장치를 살짝 섞습니다. 마치 현실과 비현실이 겹치는 듯한 순간들 속에서, 두 사람은 어릴 적 기억과 아버지의 존재를 다시 마주합니다. 이 장치는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감정적으로 자연스럽습니다. 그들은 말로는 싸우지만, 마음속에서는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감독 장유정은 이러한 감정선을 유머로 가볍게 풀어냅니다. 슬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웃음 속에 스며들게 만드는 연출이 돋보입니다. 관객은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대사를 따라 웃다가, 어느 순간 진심 어린 대화에 눈시울을 붉힙니다. 마동석은 거칠지만 따뜻한 형의 모습으로, 이동휘는 서툴지만 진심 어린 동생으로, 각자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냅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아버지의 유언과 그 의미는 작품의 감정적 정점을 이룹니다. 그것은 단순히 가족 간의 용서를 넘어, “서로의 인생을 이해하고 존중하라”는 메시지로 확장됩니다. 현실에서는 자주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지만, 결국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영화는 따뜻하게 일깨워줍니다. <부라더>는 그래서 단순한 ‘형제 코미디’가 아닙니다. 그것은 웃음으로 포장된 ‘애도의 영화’이며,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는 여정을 그린 감정극입니다.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생활 속에 녹여낸 연출 덕분에 관객은 부담 없이 감동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코미디의 힘으로 전달한 인간적인 메시지
한국 영화의 코미디는 종종 과장된 설정이나 억지 웃음으로 흘러가곤 하지만, <부라더>는 다릅니다. 이 영화는 ‘웃음의 진심’을 알고 있습니다. 감독은 웃음을 단순한 오락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감정의 매개체로 활용합니다. 웃음은 형제의 상처를 봉합하고, 관객의 경계를 허물며, 결국 진심이 닿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특히 마동석과 이동휘의 조합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두 사람은 세대와 성격이 다르지만, 서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냅니다. 형제의 대화 속에는 유머가 넘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언제나 외로움이 숨어 있습니다. 그 외로움이 바로 ‘인간다움’의 본질이죠. <부라더>의 대사는 짧고 현실적입니다. ‘진짜 형제끼리는 싸우는 게 정이야.’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끼리 잘 살아야지.’ 이런 대사들이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곱씹을수록 묵직한 의미를 남깁니다. 이처럼 영화는 거창한 명언이나 교훈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로 삶의 진실을 전합니다. 또한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지만, 끝내 서로를 버리지 않는 관계입니다. 감독은 이를 단순한 감상주의가 아닌,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결국 형제는 완벽하게 화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웃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영화의 결론입니다. 음악과 영상도 이러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뒷받침합니다. 따뜻한 색감, 잔잔한 기타 선율, 그리고 고향 마을의 풍경은 영화의 감성을 부드럽게 감싸며 관객을 추억 속으로 이끕니다. 결국 <부라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족이란, 때로는 멀어지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인연이다.” 이 영화는 거대한 사건도, 극적인 전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우리의 일상과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웃음 뒤에 남는 따뜻한 울림, 그것이 바로 <부라더>가 가진 가장 큰 힘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형제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나가 지치고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이 결국 돌아갈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이 ‘가족’임을 조용히 일깨워주는 영화. <부라더>는 그래서 웃음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나지만, 마지막에는 미소를 남기는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그것이 바로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코미디’의 완성입니다.